누가 안식일을 변경하였는가?

많은 교파들의 인정

성경 신약 계시록 책 1 장 10 절에서는 “주의 날에” 사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었다는 장면을 묘사한다. 예수님께서는 마 12:8 에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요한은 안식일날, 곧 주의 날에 하늘에서 온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과 언약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며 내 입술에서 낸 것도 변치 아니하리로다”. (시 89:34)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그리고 그분의 아들에 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 13:8)고 성경은 말해 준다. 예수님도 그분 자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 5:17)

많은 진실한 개신교인들은 몇 개의 성경절들이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하였다는 지지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카톨릭 교회와 일반 개신교는 이렇게 공언한다.

개신교의 공언(公言)

미국 합동 교회: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그들의 권위로 제 칠일 대신 제 일일을 세웠다는 작금의 이론은 절대로 신약 성격에 근거가 없는 말이다.” -Dr Layman Abott, 1890년 6월 26일자 Christian union

그리스도 교회: “그러므로 하늘이 주신 모든 말씀중에는 안식일이 변경되었다던가 주의 날이 그 대신 생겨 났다는 증언이 전혀 없다.” -Alexander Cambell, 1921년 10월 8일 자 The Reporter

침례교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옛날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러나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이다. 하 지만 안식일은 그 날과 관련된 모든 의무와 특권과 거룩한 구별됨과 함께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옮겨 졌다고 거침없이, 때로는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지식을 열심히 찾아 구했고 또 여러 해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한 필자로서는 그런 교체가 이루어진데 대한 기록이 어디 있냐고 묻고 싶다. 신약에는 절대 없다. 안식일 제도가 제 칠일에서 주일 중 첫째 날로 변경된 성서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E. T. Hiscox 박사 [침례교 요람] 의 저자

루터 자유 교회: “안식일이 일요일로 옮겨진 것이 주께서 직접 명하셨든지 사도들이 명했든지 성경에 그 근거가 단 한줄도 없으므로 누가 안식일을 옮겼으며 그렇게 한 권한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George Sverdrup, A New Day.

영국 국교도 성공회파: “그러면 성경에 일요일을 지키라 한 곳이 어디 있는가? 제 칠일을 지키라 한 곳은 있어도 제 1일을 지키란 명령은 아무데도 없다.” -Isaac Williams, Plain Sermons on the Catechism, pp. 334, 336

영국 성공회파: “우리는 거룩한 세계적인 그리스도의 사도교회(천주교를 뜻함)의 권위로 안식일을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했다.” -Symour, Why We keep Sunday-

미 남침례교회: 제칠일의 거룩한 이름은 안식일이다. 이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출 20:10 이 인용됨) …. 이 점에 대한 말씀의 분명한 가르침은 모든 시대에 인정을 받았다. 단 한번도 제자들은 안식일을 주일중 첫날에 적용한 일이 없었고 첫째날이 안식일을 대신하려고 생각한 일도 없었다. 그런 우행(愚行) 은 후일로 미루어졌다. -Joseppph Judson Taulor, The Sabbath Question, pp. 14-27, 41.

사도교회: 첫째 날을 주의날로 지적하는 성서적 근거는 없다.“ -Dr. D. H. Lucas, Christian Oracle, 1890년 1월호,

천주교의 공언(公言)

“만일 개신교 신자들이 성경을 따르려 한다면 그들은 안식일에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 일요일을 지킴으로서 그들은 천주교회의 법을 지키는 것이다.” – Albert Smith, 발티모어 교구 주교의 고문으로 주교를 대신하여 쓴 1920년 2월 10일자 답신 중에서.

“이 안식을 (안식일에서)일 요일로 옮긴 것은 천주교회였다. 그러므로 개신교회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인정하건 말건 (천주) 교 회의 권위에 경의를 표하는 행위이다.” – Mosignor Louis Segur, Plain Talk about the Protestantism of Today, p .213.

“우리가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은 천주교회가 그 신성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이다. -PeterGeiermann, CSSR, A Doctrinal Catechism, 1957 ed p.15

“교회는 안식일 준수를 일요일로 이전했다. 이는 이 공회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거룩하고 무오(無誤)한 권위에 입각한 것이다. 개신교회들은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안내자로 삼기 때문에 일요일을 지킬 명분이 없다. 이점에 있어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일관성 있는 유일한 개신교회라 하겠다.” -The Catholic Universe Bulletiin, 1942년 8월 14일 자, p. 4.

“일요일은 천주교의 제도이며 그 준수는 오로지 천주교의 원칙으로만 변호된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다 살펴보아도 거기엔 매주 드리는 회중 예배를 마지막날에서 첫째 날로 옮기도록 허용한 말씀이 단 한 줄도 없다.” – The Catholic Press, Sydnes, Australia, Augustm 1900.

개신교는 (천주)교회의 권위를 무시하므로 그들의 일요일 이론을 뒷받침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마땅히 토요일을 지켜야 한다. -John Gilmary Shea, American Catholic Qyarterly Renview January 1893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성경이 그들의 일요일 준수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회고함이 좋을 것입니다. 일요일은 로마 천주교의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지키는 사람은 천주교회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Brady 신부의 연설문 중에서 뉴 저지 주 엘리자베스 시의 “News”지, 1903년 3월 18일자.

“개신교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회중 예배일로 받아들임으로 그것을 바꾼 천주교회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일요일 지킴으로서 (천주)교회의 대변자인 법왕의 권위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Our Sunday Visitor, 1950년 2월 5일 자.

이런 여러 교파들의 공언은 성경이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가르쳐 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모두 안식일을 준수하였고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주장한 자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 그 변화의 배후에는 과연 누가 관련되었을까? 역사의 증언은 그 진상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

콘스탄틴이 로마의 황제가 된 초기 4 세기경에 그는 전쟁 중 하늘에서 불붙은 듯한 십자가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 십자가 아래는 라틴어로 무언가가 쓰여 있었고 그 의미는 “이 부호를 가지고 정복하라” 는 뜻이었다. 이 환상은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킨 계기가 되었지만 그의 영향으로 이교의 많은 의식과 관습들이 그대로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안식일의 변경과 사단의 흉계

이교에 양보하는 정신은 하나님의 권위를 한층 더 무시하는 길을 열었다. 사단은 헌신하지 못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하여 넷째 계명에 손을 대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옛적부터 내려오는 안식일을 폐하고, 그 대신에 이교도들이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로 지켜온 그날을 축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경을 초기에는 공공연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처음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참 안식일을 지켰다.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돈독하였고, 그분의 율법의 불변성을 믿었으므로 율법의 신성성을 열렬하게 옹호하였다. 그런데 사단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자신의 대리자들을 통하여 대단히 교묘한 방법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요일에 집중시키기 위하여 그날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축일로 삼았다. 그날에 종교적 행사들이 행해졌지만, 그날은 다만 오락일로 여겨졌을 뿐이며, 안식일은 여전히 신성하게 준수되고 있었다.

사단은 자기가 목적한 사업을 성취할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초림 전에 먼저 유대인으로 하여금 안식일을 가혹한 부담이 되게 하여 그날을 준수하는 일이 무거운 짐이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이와 같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릇된 것을 이용하여, 그것을 유대인의 제도라고 모욕하였다. 일요일을 즐거운 축일로 삼아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는 한편 그는 유대교에 대한 증오감을 보이기 위하여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이요, 우울하고 슬픈 날로 삼도록 그들을 이끌었다.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칙령을 내려 일요일을 로마 제국 전체의 공적인 축일로 삼았다. 태양의 날은 이교도들이 존중하고 있는 동시에 그리스도인들도 존중하고 있었다. 이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충돌하는 이해(利害)를 연합시키는 것이 황제의 정책이었다. 그리스도교와 이교도가 같은 날을 지킨다면 이교도들이 명목상으로라도 그리스도교를 채택하는 일이 촉진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교회의 권세와 영광이 더할 것을 깨달은, 야망과 권력욕에 고무된 교회의 감독들이 황제에게 그렇게 하도록 촉구하였다. 그러나 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이 어느 정도 신성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안식일을 하나님의 거룩한 날로 주장하였고, 넷째 계명에 따라 그날을 지키고 있었다.

대기만자는 그의 일을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교 세계를 자기의 깃발 아래 모으고, 자기의 대리자, 곧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주장하는 거만한 대감독을 통하여 자기의 권세를 발휘하고자 결심하였다. 그는 완전히 회개하지 않은 이교도들과 야심이 가득한 감독들과 세속적 욕망을 가진 교직자들을 통하여 자기의 목적을 이루었다. 때때로 대규모 종교 회의들을 경영하여, 온 세계에서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을 소집하였다. 거의 모든 회의에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은 조금씩 가치를 저하시키는 동시에 일요일은 조금씩 높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교의 축제일은 신성한 제도인 듯이 높임을 받게 된 반면 성경상 안식일은 유대교의 유물이라는 선고를 받고, 그날을 지키는 자는 저주를 받을 자로 공포되었다.

이리하여 이 큰 배도자는 마침내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살후 2:4)게 스스로를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대담하게도 모든 인류에게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정확하게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율법의 유일한 계명을 변경하려고 시도하였다. 넷째 계명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창조주로서 계시되었으며 그런 까닭에 다른 거짓 신들과 구별되신다. 그리고 제칠일이 인류의 안식일로 거룩히 구별된 것은 한편으로 창조 사업을 기념하는 동시에, 또한 인류의 마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며 존경과 예배의 대상이 되신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는 사단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지적해 주는 계명을 특별히 공격하고자 애쓰고 있다.

일요일 휴업의 제도가 시작됨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므로 그날이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에 관한 성경상 증거는 전혀 없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은 그날을 그와 같이 높이지 않았다. 그리스도교의 제도로써 일요일을 준수하게 된 단서는 이미 바울의 시대에 활동을 시작한 “불법의 비밀”(살후 2:7)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 이 법왕권의 소생(所生)을 양자로 삼으셨는가? 성경이 인정하지 않는 이와 같은 변경에 대하여 어떠한 타당한 이유를 댈 수 있겠는가?

6세기에 법왕권은 확고하게 확립되었다. 그의 권좌는 로마에 위치하게 되었고, 로마의 감독은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공포되었다. 이교는 그의 지위를 법왕에게 넘겨주었다. 곧 용이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계 13:2)를 주었다(부록 5 참조). 이리하여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한 1260년간의 법왕권의 박해가 시작되었다(단 7:25; 계 13:5~7 참조).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절개를 버리고 법왕교의 의식과 예배를 받아들이든지, 지하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대(拷問臺)와 화형(火刑)과 참형(斬刑) 집행자의 칼에 생명을 빼앗기든지, 그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눅 21:16, 17)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박해는 전에 없이 한층 더 격렬하게 충성된 사람들에게 임하였으므로 세상은 하나의 큰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수백 년간 그리스도교회는 인가가 없는 궁벽한 곳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선지자는 이 일에 대하여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6)고 예언하고 있다. (대쟁투 3장)

창조주께서 쉬시고 축복하심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안식일은 거룩한 에덴에서 죄 없이 살던 아담이 지켰고,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이 타락한 상태에서 회개한 후에도 준수하였다. 아벨로부터 의로운 노아, 아브라함, 야곱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조상들이 그날을 지켰다. 택한 백성이 애굽의 노예가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주위에 편만한 우상숭배의 풍조에 휩쓸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을 구원하여 내실 때 그분께서는 집결되어 있는 무리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려 주고 영원히 당신을 두려워하며 순종하게 하시고자 놀라운 영광 가운데서 당신의 율법을 선포하셨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지식은 이 세상에 보존되어 왔고, 넷째 계명의 안식일은 지켜져 왔다. 비록 “죄악의 사람”이 하나님의 성일을 유린하는 데 성공하였을지라도 그의 최상권의 시대에 있어서까지도 은밀한 장소에 숨어서 성일을 거룩히 지킨 충실한 사람들이 있었다. 종교 개혁 시대 이래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날을 지키는 어느 정도의 무리가 반드시 있었다. 때때로 박해와 조소를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과 창조의 안식일에 대한 신성한 의무가 항상 증거되어 왔다.

“영원한 복음”과 관련하여 요한계시록 14장에 제시된 이 진리들은 재림시대의 그리스도 교회의 특징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삼중 기별이 전파된 결과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선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리고 그것은 재림 전에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마지막 기별이다. 그 기별이 전파된 후에 인자가 이 세상의 추수를 위하여 영광 중에 오실 것이 선지자에게 보여졌다.

성소와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에 관한 빛을 받은 사람들은 그들이 이해하게 된 그 진리의 체계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보고 경탄하고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에게 그처럼 귀중하게 보였던 빛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열망하였다. 그들은 그것이 즐거이 받아들여질 것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세상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하는 그 진리를 환영하지 아니하였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순종하면 희생이 요구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서 돌아섰다.

안식일에 대한 의무가 제시되면 많은 사람들은 세속적인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일요일을 지켜왔다. 우리의 조상들도 그날을 지켰다. 경건하고 선량한 많은 사람들이 그날을 지키다가 행복하게 죽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옳은 일이었다면 우리에게도 옳은 일이다. 그런데 이 새 안식일을 지키게 되면 필연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조화가 깨어져 그들에게 아무런 감화도 줄 수 없게 될 것이다. 제칠일을 지키는 하나의 작은 단체가 일요일을 지키고 있는 온 세계를 대항하여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은 논법으로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일을 정당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희생 제물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았는데 그 자손들이 그와 동일한 길을 따름으로 구원을 얻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루터 당시의 법왕교도들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천주교의 신앙을 가지고 죽었으므로 그 신앙이야말로 구원을 얻기에 충분한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와 같은 이론은 종교적 신앙과 행위의 발달을 효과적으로 방해하는 것임이 입증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여러 세기 동안에 확립된 교회 전반의 관습이요 교리라고 주장했다. 그 러나 이에 대하여 안식일과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더욱 오래된 일이요 더욱 널리 보급되었던 일이며, 세상 그 자체만큼 오래된 것이요 하나님과 천사들이 다같이 인정한 것이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고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할 그 때에 안식일의 기초도 놓였다(욥 38:6, 7; 창 2:1~3 참조).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제도를 존중히 여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사람의 권위로 제정되거나 사람의 전통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요,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그분의 영원한 말씀으로 명령되었다.” (대쟁투 26장)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